진원박씨 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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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전해온 진원박씨 족보 중 가장 오래된 것은 죽천(竹川) 선조의 손자인 동계공 춘장(東溪公春長)이 1657년에 처음 간행한 정유보(丁酉譜)이다.

거기에 시조는 휘 진문(諱進文)으로 기록하면서 그 이상은 문적이 없어 알 수 없다고 사행을 정리하였다. 시조 휘 진문공은 신라 시조 왕 박혁거세의 왕손으로

고려조에서 지위가 대장군에 이르렀고 그 이상은 문적이 없어 알 수 없다는 말이다.

 

동계공은 보서(譜序)에 “진원에서 구보(舊譜)를 가져다가 자손의 지파(支派)를 찾고자 간행한다” 고 하였으니, 이미 그 훨씬 전에 족보가 있었음이 분명하고 동시에 시조 진문장군에 관한 것도 오랜 문적에 따른 것임을 알 수 있다. 시조 휘 진문공과 2세 대상(大相) 휘 효대(孝大)공은 관작만 기록되었을 뿐 배위(配位) 조차 기록이 없다.

 

3세인 검교장군 휘 빈(贇)공이 진원오씨 시조 휘 존석의 사위이고, 4세인 판군기감 휘 성량(成亮)공이 전주전씨의 시조인 휘 원려의 사위였고, 5세인 문하시중과 대제학을 지낸 휘 첨(瞻)공이 진원오씨 휘 익의 사위였으며, 6세 수군병마절도사 휘 홍서(洪瑞)공은 전주최씨 휘 송의 사위이고, 7세 구례감무 휘 온(溫)공은 진원전씨(현 담양전씨) 대사헌 휘 의(籎)의 사위가 되었다.

 

이상 상계 7세의 혼인관계가 장성지방의 명족과 이루어진 점을 볼 때 장성에 정착은 12세기 고려 명종 무렵으로 짐작된다. 진원(珍原) 고현(古縣)을 중심으로 구진(丘珍)이나 진원(珍原)으로 관향을 삼고 살아왔으며 세종 14년에 발행한 신찬팔도지리지에 장성에 박씨가 주성을 이루고 있다고 하였다.

 

우리 문중의 중흥조이신 8세 위남공(葦南公) 휘 희중(熙中) 선조는 문과에 급제하여 동궁(東宮:世宗)의 서연관을 거쳐 예문관 직제학과 남원부사를 지냈다. 필명이 높아 해동필원에 등재되고 청백전가(淸白傳家)의 종훈을 남겼다. 장자 9세 휘생(暉生)공은 장파 파조로 입보성조이며, 차자인 곤생(坤生)공이 장성 중파 파조이고, 삼자 진생(進生)공은 장성 계파 파조이다.

 

입보성조인 휘생공의 아들 문기(文基)공의 장남 흥원(興原)공은 장종파 파조, 차남 계원(繼原)공은 장중파 파조, 삼남 윤원(胤原)공은 장계파 파조다.

이렇듯 우리 진원박씨 대종회는 5개 파(장종, 장중, 장계, 중, 계)로 이뤄져 종문사를 운영하고 있다.

 

 

오늘날 전해온 진원박씨 족보 중 가장 오래된 것은 죽천(竹川) 선조의 손자인 동계공 춘장(東溪公春長)이 1657년에 처음 간행한 정유보(丁酉譜)이다.

거기에 시조는 휘 진문(諱進文)으로 기록하면서 그 이상은 문적이 없어 알 수 없다고 사행을 정리하였다.

시조 휘 진문공은 신라 시조 왕 박혁거세의 왕손으로 고려조에서 지위가 대장군에 이르렀고 그 이상은 문적이 없어 알 수 없다는 말이다.

 

동계공은 보서(譜序)에 “진원에서 구보(舊譜)를 가져다가 자손의 지파(支派)를 찾고자 간행한다” 고 하였으니, 이미 그 훨씬 전에 족보가 있었음이 분명하고 동시에 시조 진문장군에 관한 것도 오랜 문적에 따른 것임을 알 수 있다. 시조 휘 진문공과 2세 대상(大相) 휘 효대(孝大)공은 관작만 기록되었을 뿐 배위(配位) 조차 기록이 없다.

 

3세인 검교장군 휘 빈(贇)공이 진원오씨 시조 휘 존석의 사위이고, 4세인 판군기감 휘 성량(成亮)공이 전주전씨의 시조인 휘 원려의 사위였고, 5세인 문하시중과 대제학을 지낸 휘 첨(瞻)공이 진원오씨 휘 익의 사위였으며, 6세 수군병마절도사 휘 홍서(洪瑞)공은 전주최씨 휘 송의 사위이고, 7세 구례감무 휘 온(溫)공은 진원전씨(현 담양전씨) 대사헌 휘 의(籎)의 사위가 되었다.

 

이상 상계 7세의 혼인관계가 장성지방의 명족과 이루어진 점을 볼 때 장성에 정착은 12세기 고려 명종 무렵으로 짐작된다. 진원(珍原) 고현(古縣)을 중심으로 구진(丘珍)이나 진원(珍原)으로 관향을 삼고 살아왔으며 세종 14년에 발행한 신찬팔도지리지에 장성에 박씨가 주성을 이루고 있다고 하였다.

 

우리 문중의 중흥조이신 8세 위남공(葦南公) 휘 희중(熙中) 선조는 문과에 급제하여 동궁(東宮:世宗)의 서연관을 거쳐 예문관 직제학과 남원부사를 지냈다. 필명이 높아 해동필원에 등재되고 청백전가(淸白傳家)의 종훈을 남겼다. 장자 9세 휘생(暉生)공은 장파 파조로 입보성조이며, 차자인 곤생(坤生)공이 장성 중파 파조이고, 삼자 진생(進生)공은 장성 계파 파조이다.

 

입보성조인 휘생공의 아들 문기(文基)공의 장남 흥원(興原)공은 장종파 파조, 차남 계원(繼原)공은 장중파 파조, 삼남 윤원(胤原)공은 장계파 파조다.

이렇듯 우리 진원박씨 대종회는 5개 파(장종, 장중, 장계, 중, 계)로 이뤄져 종문사를 운영하고 있다.